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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만남으로 완성된다.

천안역사문화연구소장, 충남신문 칼럼니스트/ 김성열

편집부 | 기사입력 2021/11/11 [09:06]

인생은 만남으로 완성된다.

천안역사문화연구소장, 충남신문 칼럼니스트/ 김성열

편집부 | 입력 : 2021/11/11 [09:06]

  

 

 

인생을 살수록 점점 더 만남이 소중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살아가며 좋은 이들을 만나 함께 사는 것이 인생의 가장 큰 행복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인생은 만남이다. 만남으로 인생은 시작되고, 만남으로 인생은 성숙하며, 만남으로 인생은 버텨지고, 만남으로 인생은 완성되는 것이다.

 

얼마 전 선배 한 분을 만났다. 이야기도 나누고 식사도 함께했다. 사회생활 겪은 이야기도 나눴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와 그분과의 대화를 돌아보니 왠지 마음이 편하진 않았다. 아니 편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저 자신이 불쌍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고는 결정했다. 다시는 만나지 않겠다고요. 만나고 싶은 마음이 아예 사라져 버렸다.

 

이런 경험을 하면서 저 자신에게 물었다. ‘혹시 나로 인해 주변 사람을 초라하게 만들지는 않았는가’하는 것이었다. 나 때문에 함께 있던 사람이 스스로 자기 자신을 불쌍하거나 처량하게 느낀 일은 없을 까 곰곰이 생각했다. 이렇게 자문해보니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교만하고 거만한 사람은 주변 사람을 초라하고 불쌍하게 만든다. 그러나 겸손하고 온유한 사람은 주변 사람들에게 힘과 용기를 준다. 마음에 큰 행복을 느끼게도 한다. 나로 인해 주변 사람을 초라하게 만든다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교만하고 거만한 사람이 돼버린 것이다.

 

사람은 보통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을 5명 정도 둔다고 한다. 대개 직계가족, 부부 혹은 가까운 파트너가 될 것이다. 그다음은 15명, 50명, 150명으로 증가한다. 전문가 연구에 의하면 인생의 행복이나 기쁨, 만족은 15명 안에서 나온다고 한다. 15명의 관계가 좋으면 그 인생은 행복하다고 느끼고, 가장 가까운 15명의 관계가 불편하면 그 인생은 불행하고 버겁다고 느끼게 된다.

 

그런데 우리는 가까운 사람에게 아무렇게나 대하는 경우가 있다. 예의를 잘 지키지도 않고 약석 시간에 조금 늦게 가거나 약속을 갑자기 변경해도 이해해 줄 거라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15명은 우리의 행복과 불행을 결정짓는 중요한 관계라는 점에서 함부로 할 수 없다.

 

서로 사이가 좋으려면 자신만 좋다고 관계가 나아지니 않는다. 두 사람의 중간, 즉 ‘사이’가 좋아야 한다. 두 사람이 서로 잘난 척하거나 저기주장이 강하면 사이가 좋을 수 없다. 중국에서는 인간을 칭할 때 ‘인(人)’자만 쓴다.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는 인간(人間)이라 한다. ‘인생세간(人生世間)’, 즉 사람과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사라는 말이 바뀐 거리고 한다. 행복은 관계의 평안합니다.

 

만남은 인생의 역경 고난 고통을 자우하게 한다. 공자를 만나면 역경은 조심하지 않았다고 한다. 부처를 만나면 마음을 비우고 고통을 잊어버리라고 한다. 무함마드를 만나면 숙명이다. 알라의 뜻이다 라 한다. 힌두교를 만나면 업보 때문이라 한다. 예수님을 만나면 구원해 주셨다고 한다. 이미 만나면서 곧 이루었다 한다. 예수님을 만나면 구원의 은총 평안을 받는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의 방향의 의미가 달라 지게 된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인생행로가 결정될 수 있다. 만남은 은혜 은총 축복이다.

 

지식생태학자이자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인 한양대 유영만 교수는 ‘이런 사람 만나지 마세요.’라는 책에서 우리가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들에 대해서 귀가 솔깃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유 교수는 만나지 말아야 할 유형을 10가지로 소개한다.

 

첫째, 귀 막힌 사람이다. 귀를 닫고 듣지 않는 사람은 상대가 무슨 이야기를 해도 이미 자기 안에 모든 답과 결론을 내린다. 타협하거나 재고의 여지를 두지 않는다. 대화가 지속될수록 소통의 문은 닫히고 불통만이 남는다.

 

둘째, 필요할 때만 찾고 구하는 사람이다. 이런 인간은 모든 인간관계를 거래로 보기 때문에 정작 내가 필요할 때는 고개를 돌리거나 꼭 필요한 때는 자리를 피한다.

 

셋째, 오직 나뿐인 사람이다. 사람은 주고받으며 사는 존재인데, 자기중심인 사람은 함께할 수 없다.

 

넷째, 365일 과시형이다. 지나친 과시는 무시를 불러오고 멸시를 낳게 된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경험과 성과, 지식만을 강조한다. 결국 다른 사람의 생각은 인정하지 않게 된다. 창조적 생각은 다른 생각을 만나 충돌할 때 탄생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다섯째, 말문을 막는 사람이다. 말문을 막는다는 것은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도 전에 틀렸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적게’ 말하면 ‘적’도 그만큼 없어진다.

 

여섯째, 과거지향적인 꼰대다. 입만 열면 ‘옛날’만 들먹이는 사람들이 모인 곳에는 미래가 없으며, 현재도 없다. 오직 과거만 있을 뿐이다. 과거의 추억은 상상력의 재료가 되기도 하지만 지나치게 매몰될 경우 현재와 미래까지 삼켜 버린다. 유 교수는 “꼰대는 과거로 돌아가려 하고, 리더는 미래로 향한다.”고 말한다.

 

일곱째, 감탄을 잃은 사람이다. 감탄을 잃은 사람은 도전을 회피하고 현재 삶에 안주하고 싶어 한다. 인간이 성숙하기 위해서는 현실 안주가 아닌 낯선 것을 경험해야 한다. 그래야 감탄도 할 수 있다.

 

여덟째, 책(冊)을 읽지 않고 책(責)잡히는 사람이다. 공부는 일종의 지적호흡이다. 호흡을 멈추면 생명체가 죽음을 맞이하듯 지적 호흡을 멈추면 정신적 성장도 거기서 멈추게 된다. 공부를 멈추는 순간 사람은 늙기 시작한다.

 

아홉째, 단점만 지적하는 사람이다. 이들은 긍정보다 부정, 장점보다 단점을 보는 눈을 지속적으로 개발했기 때문에 모든 사람과 이야기할 때마다 꼬투리를 잡고 물고 늘어진다. 뒤에서 험담하고 비난하는 사람보다 칭찬해주는 사람을 만나야 인생이 풀린다.

 

마지막은 대접은 잘 받고 은혜를 저버리는 사람이다. 이들은 물심양면으로 자신을 도와준 이들의 은혜를 잊어버리는 탁월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만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우선 이런 사람을 만나기 전에 나는 이런 사람이 아닌지 살펴보아야 한다. 유 교수는 “나는 곧 내가 만나는 사람입니다.”라고 말한다. 내가 만나는 사람이 나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관계 맺기가 더욱 조심스러워진다. 그래서 인연 함부로 맺지 말라는 말이 있는가 보다. 자신이 단단하고 무슨 일에도 흔들리지 않는 정신을 가졌으면 괜찮지만 남의 말에 쉽게 흔들리는 타입이라면 사람을 만나는 걸 아주 신중히 생각해야 한다.

 

사람은 만남을 통해 변화된다. 인생은 만남이 중요하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삶이 크게 바뀌기 때문이다. 한 번의 좋은 만남이 인생을 180도로 바꿔버린다. 나는 이런 사람 속에 속하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 확인시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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