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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선각자 윤치호 천안군수

천안역사문화연구실장 김성열

편집부 | 기사입력 2014/07/19 [10:44]

민족 선각자 윤치호 천안군수

천안역사문화연구실장 김성열

편집부 | 입력 : 2014/07/19 [10:44]

▲     © 편집부
민족선각자 윤치호박사가 1903년 7월6일(관보)에 천안 군수로 발령 8월 7일자로 부임했다. 직산 군수도 겸임하면서 경부선 철도 검봉관을 겸임하였다. 대한제국에서는 외부협판(1895), 학부협판(1895), 탁부협판, 의정부 참의, 황실 최초 미국공사 선교사 통역관이었고 감리교 장로였다.

그리고 독립협회 회장(1898), YMCA 총무 회장(1912), 연희전문 교장(1912),애국가 작사로 알려진 찬미가 발행(1912) 등 수 많은 독립자강 단체를 창립하고 이끌어 가면서 일제시대에 저항하는 역사 소명이 투철한 올 곧게 산 석각자였다.

기독교 세력을 말살하기 위해 일제가 날조한 105인 사건 주모자로 구속 복역하기도 했으며, 일제로부터 외부대신 서리를 제의 받고 거절한 충절인물이다.

윤치호 장로는 천안 군수로 부임하면서 천안지역감리교회 입장 양대, 수신 장명, 병천 지령리교회 지도자들과 회동하고 천안지역의 중심 연락처가 될 천안읍교회(서릿말) 설립 준비를 발의한 기도회를 주선하였다.

1903년 천안읍감리교회(서릿말)을 발원으로 천안예배당(사직동), 천안감리교회(문화동), 천안제일감리교회(문화동), 천안중앙감리교회(성황동), 하늘중앙교회(백석동), 하늘샘교회(구룡동)으로 이어 110년 역사가 전승되었다.

물을 수 없으면 짖지도 말라는 좌우명은 일제시대를 온 몸으로 저항한 최고 지성인 윤치호 장로의 고뇌에 찬 힘의 정의론이다. 이는 힘없고 미개하고 가난한 민족이라서 나라를 잃고 일본인들 식민지로 백성들이 억울하게 차별 대우받는 현실을 분개 반발 대항하는 피 맺힌 절규이다. 억울하면 힘을 길러야 한다. 힘이 없는 민족이라 나라를 빼앗기고 무시 차별지배 받을 수밖에 없다.

저열한 민족성은 나라를 쇠퇴시키고 나라를 망쳤고 힘 있는 일본에게 식민지 노예로 전락했다. 저열한 민족성은 게으름, 불결함, 허영, 이기심, 공공정신 결여, 단결력 부족, 분파주의, 지역감정, 노동천시 폐습 등이다.

저열한 민족성을 개조하는 덕목은 성실, 정직, 신용, 공공정신 그리고 허영을 버리고 실행하면서 착실하고 솔직한 말을 하고 근로정신을 고취하고 노동천시 폐습을 타파하고 경제 자립 능력 양성을 집중하자 했다. 곧 자강불식(自强不息), 실사구시(實事求是)이다. 자치 자강운동을 해서 힘을 길러야 한다. 기술, 산업 능력사회 민족으로 개혁 교육하여야 한다.

실업학교를 세우고 교회를 설립하고 국민정신 계몽, 개화교육, 민족정신 개조를 외쳐 부르짖는 거룩한 분노와 의분을 역사적 시대정신 사명으로 불태웠다. 내선일체가 불가하다. 민족적 전통과 정서를 유지해야 하며 민족독자성과 정체성을 무시할 수 없다.
 
 민족차별 정책을 철폐하고 일본인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으려면 힘이 있어야 한다. 힘없는 현실에서 독립투쟁운동은 무모하고 불용할 뿐이다. 힘 있는 도덕적 독립운동 정치적 독립을 이루어 다민족 대국가 大 東方主義(대 동방주의)를 주창했다.
 
일제에 온 몸을 던져 역사와 시대 중심에 분명하게 두텁고 굵은 자취를 남겨 논 의분의 선각자였다. 친일 역사인물로 몰아 정죄할 수만은 없는 인물이다. 역사적 인물을 정죄할 수 있는가 생각하는 지성이 필요하다.

역사의 인물을 주관적 의식과 어떤 목적이나 이념 또한 편협 된 주관을 가지고 평가 비하 비평 규탄 비판하는 졸렬한 자세를 접어두고 성숙한 역사의식으로 평가해야 한다. 역사는 절대적이기 보다는 개연성이 있다. 역사가 우리에게 일깨워주려는 뜻을 찾는 역사의식이 필요하다.
 
 국가가 없던 시대 민족과 민족성에 매달렸던 고독한 석각자의 고뇌를 우리시대에 본으로 삼자. 그 시대를 온 몸으로 암울한 현실을 겪으면서 고뇌하고 의분하며 시대정신이 충실한 씨알이었다.

역사의 사실을 입체적으로 보고 전체적으로 생각하는 역사의 눈과 의식이 필요하다. 내가 그 시대에서 겪어야 할 가능성과 우리 모두가 같이 겪어야만 했던 현실을 공동체 역사의식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나라 없는 백성을 붙들고 윤치호 군수는 힘겨운 역사의식 시대정신 갈등을 겪었다.

윤치호군수가 유학했던 에모리대학에 애국가 작사 친필본이 보관되어 있어 지인을 통해 친필본 사진을 부탁해 놓았다.

윤치호 군수의 민족성 개조론과 물수 없으면 짖지도 말라는 좌우명 그리고 힘이 없으면 억울하게 당한다. 실질적인 실력을 길러야 한다는 절규를 오늘 우리 역사적 시대정신으로 전승한다.    
  
  
                                                                                               천안역사문화연구실
                                                                                                     실장  김 성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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