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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내 탓’은 없을까?

충남신문 고문, 칼럼니스트, 경제학박사 /이승철

편집부 | 기사입력 2022/11/11 [09:16]

왜 ‘내 탓’은 없을까?

충남신문 고문, 칼럼니스트, 경제학박사 /이승철

편집부 | 입력 : 2022/11/11 [09:16]

  

 

지금은 거의 잊힌 것이지만, 요즈음 가장 생각나는 사회적 캠페인 가운데 하나는 바로 ‘내 탓이오’ 운동이다. 1990년 전후에 시작하여 가톨릭 교계의 큰 어른이던 고 김수환 추기경이 타고 다니던 소형 승용차에 ‘내 탓이오’ 스티커를 부착한 것을 기화로 전국적인 사회운동으로 확산되었던 바로 그 운동 말이다. 필자의 기억이 틀리지 않는다면 이 운동의 시작은 1980년대 말 가톨릭 교계에서 매년 있는 ‘평신도의 날’을 맞아 교계의 신뢰회복을 촉구하는 의미로 시작된 캠페인이었는데, 그 시기의 여러 상황들과 맞물려 1990년대 초중반에는 전국적인 사회운동으로 확산되었다.

 

‘내 탓이오’는 가톨릭 교계의 주요 기도문에 나오는 ‘고백의 기도’ 중 한 구절을 따온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당시에 만연되었던 불신풍조를 타파하고 땅에 떨어진 윤리 및 도덕을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그 원인을 ‘나’에게서 먼저 찾자는 취지의 운동이어서 많은 국민들이 공감하고 또 동참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운동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시들해졌고, 우리 경제를 나락으로 떨어뜨린 소위 ‘IMF 경제위기’와 함께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내 탓이오’ 운동 이후 지난 30년 동안 우리나라는 선진국의 초입에 들어섰다고도 하고, 여러 측면에도 많은 발전 혹은 성장을 하였다는 말이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여소야대 현상’, ‘성수대교 붕괴 사고, 아현동 가스폭발 사고,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등이 있었던 1990년대 초중반의 상황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현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 정치지도자나 정치인 등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네 탓이오’를 외치고 있다는 점도 전혀 변하지 않았음 역시 주목해 볼 대목이다. 필자의 눈에는 모든 정치지도자들이 입만 열면 상대의 잘못을 지적하기만 하고, 자신들의 구태를 반성하거나 고칠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 것으로 비친다. ‘나’ 또는 ‘내가 속한 부류’는 틀린 것이 거의 없는 반면, ‘너와 네가 속한 부류’는 맞는 것이 거의 없다고 주장한다. 정작 국민들이 어떤 판단을 하는가를 도외시한 채, 모두 ‘국민의 이름으로’ 그리고 ‘국민과 함께’라는 허울 좋은 구호를 제 마음대로 붙여 상대방을 비난하고 깎아내리는데 여념이 없다.

 

국민들을 하찮게 여기고, 선거운동 기간에만 유권자에게 아양을 떨며 표를 구걸하는 정치인들이나 고위공직자들이 기회만 주어지면 ‘네 탓이오’를 외치고 있는 변할 줄 모르는 이 암담한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아무런 노력도 기울이지 않은 채, 그저 숙명이려니 해야 되는 것일까? 이제라도 우리는 잘못된 원인을 찾아 그것을 바꾸려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 필자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유권자인 ‘우리에게’, 아니 ‘나에게’ 있다고 믿는다. 우리 유권자들도 너무 정에 약하고, 학연•지연 등에 휘둘린 경향이 없지 않았음을 인정해야 한다. 이제는 그런 사사로운 인연이나 감정에서 벗어나 우리의 주권의식을 제대로 발휘하여야 한다. 즉 앞으로 우리는 ‘자신의 신념’이나 ‘자신만의 생각’을 지키려는 사람 대신에, ‘우리들의 신념’ 그리고 ‘우리들의 생각과 행복’을 지키려는 사람을 선택하는 행동을 정치인들이나 고위공직자들에게 일관되게 보여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아픔도 감내해야만 하고 상당한 시간이 걸릴 지도 모르지만 결코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국민들의 행복과 안위에 직결되어 있는 모든 문제들을 ‘네 탓’으로만 몰아붙이지 않고, ‘내 탓’을 먼저 하는 정치인들이나 고위공직자들의 출현을 기대하는 것이 허황된 꿈이 아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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