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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양보하는 미덕을 발휘하자

아산경찰서 배방지구대 순경 임건묵

편집부 | 기사입력 2015/03/06 [10:34]

서로 양보하는 미덕을 발휘하자

아산경찰서 배방지구대 순경 임건묵

편집부 | 입력 : 2015/03/06 [10:34]

아산경찰서배방지구대
순경임건묵
최근 사건사고 관련 뉴스와 신문에 자주 나오는 수식어들이 있다. “홧김에...”,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우발적으로...” 등 보통 범죄는 계획-준비-실행 단계로 이루어지는데 왜 최근 강력범죄에 이런 수식어들이 붙게 되었을까?
 
21세기 물질만능주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사회는 이웃들간의 情이 많이 없어졌고, 사람들은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되었으며 남을 위해 양보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은 언제부터인가 바보스러운 행동이 되었다. 인생의 목표라는 큰 개념뿐만 아니라 일상 생활속에서 아주 사소한 것들도 우리는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종종 다른 사람과 다투곤 한다.
 
필자는 경찰관 생활을 한 지 이제 1년 7개월 밖에 되지 않은 신임 경찰관이다.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현장에 출동하여 수없이 많은 사람을 만나보고 사건을 처리하면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시비, 폭행신고의 대부분은 당사자들이 서로 자기 생각만 주장하다가 상대방이 자신의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아 언성을 높이고 욕을 하다가 결국에는 싸움을 벌이는 것인데 그러다가 결국 자신을 억제하지 못하고 상대방에 대한 강한 분노를 외부로 표출하면서 강력범죄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시작은 아주 사소했으나 결과는 매우 참담하다. 만약 당사자들이 자신의 주장을 조금만 굽히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조금이라도 이해했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법한 사건들이 대부분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만의 생각이 있고, 이 사회는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공존하고 화합하며 함께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 중에는 유독 타인의 이야기는 듣지 않고 자신의 주장만을 강요하면서 자신이 절대자인 것처럼 자신의 기준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사람들이 있다. 과연 그 사람들이 객관적으로 타인보다 우월하고 잘난 것일까? 오히려 그 반대이다. 부처, 예수, 간디, 테레사수녀 등 세계적으로 존경 받는 훌륭한 성인들은 모두 자신을 낮추고 타인을 위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었다. 물론 성인처럼 무조건 다른 사람을 위하라는 이야기가 아니고 자신의 생각을 내세우기에 앞서 상대방의 생각을 듣고 수용할 줄 아는 양보의 미덕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우리는 종종 내몸이 내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처럼 내몸조차도 내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데 과연 이 넓은 세상 수많은 사람을 내뜻대로 움직일 수 있을까? 한번쯤은 한걸음씩 물러서서 나보다는 남을 먼저생각하는 그런 삶을 산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조금은 더 안전하고 행복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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