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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탐사 기획보도…제16탄, 이순신 장군과 필사즉생(必死卽生)의 정신

충청남도 지역 언론 지원사업…내포 문화의 역사적 인물집중 탐방

정덕진 기자 | 기사입력 2021/09/30 [13:40]

[특집]탐사 기획보도…제16탄, 이순신 장군과 필사즉생(必死卽生)의 정신

충청남도 지역 언론 지원사업…내포 문화의 역사적 인물집중 탐방

정덕진 기자 | 입력 : 2021/09/30 [13:40]

 

충청창의인성교육원 교수/ 최창희

 

충무공 이순신 장군에 대해 거론하면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삼척동자(三尺童子)도 잘 알고 있다는 것이 잠시 주저하게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디딘 발걸음을 멈추지 못하는 것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효()와 충()이 퇴색되고 있는 21세기를 안타까워하는 마음이다.

 

 

장군의 정신과 삶을 재조명하여 우리의 마음을 가다듬고 충신열사의 본향 충청도에서 태어나고 살고 있는 것에 대한 자부심을 고양 시키고자 한다. 그 정신을 껴안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밝게 빛날 수 있도록 촛불 하나 점화하는 심정이다.

 

 이순신 장군 초상화

이순신 장군은 어린 시절 서울에 살면서 세 살 터울의 서애 유성룡과 어울렸다. 유성룡은 그가 매우 영특하고 활달해서 아이들과 함께 나무를 깎아 화살을 만들어 전쟁놀이를 즐겨했는데, 자라면서 말을 잘 타고 활을 잘 쏘았으며 글씨도 잘 썼다고 회고했다. 장차 뛰어난 무인으로서의 자질이 어렸을 때부터 발휘되었던 것을 엿볼 수 있다.

 

무관의 꿈을 이룬 이순신 장군은 그해 12월 함경도의 험준한 요새인 동구비보(董仇非堡)의 권관(權管)으로 발령받았다. 권관이란 당시 변경의 진보(鎭堡)에 두었던 종9품 무관직이었다. 그 무렵 유성룡이 사람을 보내 동개櫜鞬, 활집를 빌려달라고 하자, “이것은 빌리자는 말인가, 바치라는 말인가.” 하며 거절했다. 그 말을 전해 들은 유성룡이 몹시 흡족해하면서 장차 그를 발탁 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1592(선조 25) 413, 부산포 앞바다에 수천수만의 검은 그림자가 일렁거렸다. 향후 7년 동안 조선 강토를 폐허로 만든 임진왜란의 서막이었다. 그때부터 최신식 조총으로 무장한 왜군 20만 명이 바다를 건너 몰려들기 시작했다. 가토 기요마사와 고니시 유키나가가 이끄는 왜군 선봉대는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치고 기다리고 있던 신립 장군의 방어선을 돌파하고 북쪽으로 쾌속 진군했다.

 

 거북선



이순신 장군이 임진년의 첫 전투인 옥포 해전부터 계유년의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까지 거둔 연승 행진은 멸망 일보직전의 조선을 지탱해준 궁극의 버팀목이었다. 임진왜란의 3대첩으로 손꼽히는 한산도대첩 역시 이런 절박감과 이순신의 철두철미한 용병술이 빚어낸 당연한 승리였다.

 

三尺誓天 山河動色(삼척서천 산하동색) 一揮掃蕩 血染山河(일휘소탕 혈염산하)’

석 자의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과 물이 떨고, 한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왜적의 피가 강산을 물들이리라.’ 이것이야말로 적을 대하는 장수의 위용이었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에게 참담한 패배를 당했던 왜군 장수 와키사카 야스하루가 후손에게 내가 제일로 두려워하는 사람은 이순신이며, 가장 미운 사람도 이순신이고, 가장 좋아하는 사람도 이순신이며, 가장 흠모하고 숭상하는 사람도 이순신이다. 가장 죽이고 싶은 사람도 이순신이고, 가장 차를 함께 마시고 싶은 사람도 이순신이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이순신 장군은 전란 내내 당리당략에 빠진 뭇 위정자들로부터 충심을 외면받았지만 좌절하지 않고 흩어진 군기를 바로 세우며 왜군과 맞서 싸웠던 충신이었으며 삶의 터전을 잃고 방황하던 백성들의 안위를 살폈던 의인이었으며 부모에게는 둘도 없는 효자(孝子)였다.

 현충사

벼슬길에 올랐을 때부터 철저하게 원리원칙을 고수하고 비리를 용납하지 않았던 이순신 장군은 두 번이나 백의종군(白衣從軍)으로 부름을 받았다.

 

왜군의 공격으로 희망을 상실한 조정과 임금에게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습니다!”하고 전열을 가다듬고 필사즉생(必死卽生)의 정신으로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지킨 명장이었다.

 

조선 당에서 왜군을 전멸시키기 까지 죽어도 죽을 수 없었던 장군, 소총을 맞고 죽어가면서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라고 병사들의 수장으로서 사기를 떨어뜨릴 수 없었던 장군의 뜨거운 마음을 느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목숨을 바쳐 지켜낸 나라, 우리나라 대한민국이다.

우리나라 만세, 대한민국 만만세!

[본 기획 기사는 충청남도 지역언론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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