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지난 노랫말이지만 한때 우리의 가요계를 뒤흔든 노래 신신애 씨의 ‘세상은 요지경’에는 ‘여기도 짜가/ 저기도 짜가/ 짜가가 판을 친다’라는 노래가 떠오른다. 지금처럼 가짜뉴스가 판치는 세상에 이처럼 어울리는 노랫말이 없다. 듣자 하니, 요즘 카톡에 가짜뉴스가 판을 친다.
황당무계한 뉴스를 퍼 나르는 사람들이 많다. 이를 막지 않으면 진정한 자유민주주의도 지켜낼 수 없다. 특히 카톡에 이런 가짜 정보를 실어 나르는 사람들은 처벌해야 한다. 이들을 귀가 얇은 사람이라고 할까? 어떻게 하면, 잘라버릴 수도 없기에 닫으려 해도 가짜뉴스는 자꾸 귓속을 파고든다.
가짜뉴스는 누가 다 만들어 내는지 참 엉뚱한 데도 귀가 솔깃해져도 어쩔 수 없다. 한술 더 떠 긴급 공지를 띄워 자기들이 쓴 기사는 절대 가짜뉴스가 아니라고까지 한다. ‘가짜뉴스’는 가짜뉴스를 부르게 마련이다. 맙소사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첩보 영화보다도 황당한 일이 이 자유 천지 한국 사회에서나 가능한 말이다. 정부는 가짜뉴스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단속을 강화하고 나섰다. 가짜뉴스를 없애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거의 없다. 문제는 이런 대응 방식이 낯설지 않다는 점이다. 역대 정부마다 가짜뉴스를 없애기 위해 전쟁까지 선포했으나 마이동풍 격이다.
그때마다 조직이 만들어지고, 수사가 뒤따르고, 처벌이 강조됐으나 모두 하사였다. 윤석열 정부 시절에는 방송통신위원회 산하에 가짜뉴스 대응센터를 만들었고, 언론 관련 기관에는 신고 창구까지 마련했다. 또 문재인 정부도 가짜뉴스 종합대책 문건이 작성되고 대응 방안을 추진했다.
그 사이 가짜뉴스는 줄어들었을까? 하지만 오히려 더 가짜뉴스는 더 정교해졌고, 더 빠르게 퍼져,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됐다. 정부의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접근 방식이 근본을 비껴갔기 때문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무엇이 가짜뉴스이고 무엇이 진실인지 그 기준마저 요동쳤다.
지금까지의 대응은 대체로 '누가 만들었는가?'를 찾아내는 데 집중돼 왔다. 이제 가짜뉴스는 개인의 일탈을 넘어 그런 콘텐츠가 끊임없이 생산되도록 만드는 환경 속에서 싹이 돋아나고 있다. 자극적이고 분노를 유발할수록 더 많이 소비되고 그 소비는 조회수와 수익으로 이어지고 있다.
사실 여부를 떠나 감정의 강도가 주목도를 결정하는 환경에서 가짜뉴스는 경쟁력 있는 콘텐츠가 됐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 플랫폼의 책임을 강화하는 추세지만 가짜뉴스를 누가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지를 놓고 논란이 잠재우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정파성이 수익으로 이어지는 미디어 환경 때문이다.
그 빈틈을 가짜뉴스가 파고들고 있다. 정치권 역시 이런 환경에서 자유롭지 않다. 결국 해법은 단속을 넘어 환경을 바꾸는 데 있다. 처벌과 수사는 최소한의 억지력으로서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걸려도 남는 장사'라는 유인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건전한 저널리즘이 살아남을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일이다. 가짜뉴스와 싸우는 가장 위험한 방법은 권력이 '진실의 심판자'가 되는 것이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그것이 자라나는 토양을 바꾸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뉴스'와 '가짜'가 결합된 이 표현은 결과적으로 뉴스 전반에 대한 불신을 키우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가짜와 거짓말은 인류 역사에서 늘 존재해 왔지만 가짜가 이토록 영향력을 발휘한 적은 찾아보기 어렵다. 가짜뉴스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초절정에 다다랐다. 전 세계에 괴담과 음모론이 퍼지는 건 시대의 흐름을 악용한 현상으로 이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선한 의도를 가장한 가짜뉴스기 때문이다. 요즘 정치권은 늘 그래왔듯이 이성을 잃고 나가도 너무 나가고 있다. 꼬투리라도 잡으면 온 가족을 연좌제로 묶으려고 나서 살기마저 풍긴다. 가짜뉴스가 판치는 SNS, 흙탕물 된 공론장 SNS가 더 이상 소통의 장이 아니라 가짜가 판치는 흙탕물이 돼서는 안된다.
일부 악의적 세력은 거짓을 조작하고 왜곡된 여론을 퍼뜨려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조차 침묵하게 만든다. 미꾸라지 몇 마리가 강 전체를 흐려놓는 형국이다. 이들의 행태는 단순한 장난이나 실수가 아니다. 민주주의의 토대를 흔들고 사회적 신뢰를 무너뜨리는 심각한 범죄이다.
가짜뉴스와 허위 정보는 한순간에 여론을 왜곡하고, 성실하게 땀 흘리는 다수의 시민들을 피로와 불신 속에 몰아넣는다. 결국 피해자는 국민 모두가 된다. 이런 상황을 방치하는 것도 또 하나의 모순이다. 가짜가 빠르게 퍼지는 데 비해, 진실은 너무 느리게 전해진다.
사회적 자정 능력만으로는 이미 한계에 다다랐기에 시민사회의 감시가 동시에 작동하지 않는다면 흙탕물은 더 진해질 뿐이다. 가짜는 잠시 이길 수는 있어도 영원히 승리하지는 못한다. 진실을 말하는 작은 목소리가 결국 역사의 방향을 바꿔왔다. 그러나 그 과정이 고통스럽고 지난한 만큼 지금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가짜 속에서 진실이 흐를 수 있도록 제도와 사회가 함께 나서야 한다. 지금과 같이 가짜뉴스가 활개 치는 것을 내버려두면 몇 년 후에는 지옥의 세상으로 변해갈지 모른다. <저작권자 ⓒ 충남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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