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에서 도시농부로 살아온 지난 40년을 회고해 본다. 처음 삽을 들고 흙을 뒤집던 날부터 계절이 40여 번 바뀌었다. 그 결과 나의 검은 머리도 파 뿌리처럼 하얗게 변했다. 세월의 위대함은 인간으로서 어찌할 수 없는 사실은 만고의 진리이다.
그 많은 시간이 지나고서야 텃밭을 가꾸는 것은 단순히 채소나 작물을 기르는 공간이 아니라 사람을 키우고 삶을 가꾸는 우주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도시에 살다 보면 쉽게 자연과 멀어진다. 바쁜 일상에서 하늘을 올려다볼 여유조차 없이 산다. 그러나 텃밭에 들어서는 순간 그 모든 것은 달라진다. 흙을 손으로 만지고, 씨앗을 심고, 물과 거름을 주는 어찌 보면 단순한 행위 속에서 우리는 자연과 다시 이어진다.
흙의 온기와 부드러움, 상쾌한 바람의 결, 햇빛의 움직임을 온몸으로 느끼며 살아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텃밭은 자연으로 돌아가는 가장 빠른 길이다. 돈 없이 제일 쉽게 누릴 수 있는 쉼과 힐링의 장소이다.
무엇보다 큰 기쁨과 보람은 직접 가꾼 무공해 먹거리를 식탁에 올릴 수 있고 이웃과 나눔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상추 한 잎, 고추 한 개에도 땀과 시간과 희망이 함께 배어있다. 멀리 떨어져 있는 가족과 가까이 있는 이웃과 나눠 먹을 때의 보람과 뿌듯함은 어떤 값으로도 비교할 수 없는 행복이다.
특히 손자와 유치원 꼬마들과의 소통과 아름답고 가슴 뭉클한 추억이야말로 텃밭이 아니면 체험할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이다. 서울에 사는 손자 지후는 초등학교에 입학한 예쁜 손자이다. 또래들과 비교하여 키가 작은 편인 지후가 스스로 고구마를 심겠다고 나선 것이다.
텃밭에 검은 비닐을 씌워 놓은 두둑에 밀집 모자를 쓴 손자 모습이 의젓하다. 지후를 바라보는 나와 할머니 그리고 지후 아빠, 엄마가 흐뭇하게 쳐다볼 때 내가 시범을 보였다.
“잘 봐! 고구마는 이렇게 심는거야.”
브이자로 벌어진 고구마 심는 쇠꼬챙이에 고구마 순을 넣어 옆으로 고구마 잎파리만 남게 땅속으로 밀어 넣었다. 요령도 모르고 손에 힘이 없어 내가 같이 손잡고 몇 번 반복하니 무척 재미있어 한다. 한 두둑을 심으면서 가을에 다시 와서 네가 직접 심은 고구마를 캐야 한다고 굳게 약속했다.
이 작은 고구마 순에 얼마나 많은 고구마가 달리는지 확인하자고 약속하며 고구마를 심었다. 두둑 앞에 “지후네 텃밭”이란 조그만 간판도 만들어 설치했다. 그리고 고구마가 잘 자라도록 날이 가물면 물도 주고, 왕성한 고구마에 잔뿌리가 활착하지 못하도록 뒤집어 주는 등 정성을 기울였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되어 약속대로 텃밭에 갔다. 농부의 상징인 커다란 밀짚모자를 쓰고 조심스럽게 고구마를 캐는 어린 손자의 모습이 앙증스럽고 귀엽다. 호미로 조심스럽게 흙을 파헤치는 모습은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조심스럽게 흙을 파헤치니 튼실한 자주색의 고구마가 보인다.
“야, 고구마다! 할아버지 고구마가 이렇게 크게 많이 달렸어요.”
기쁘고 신기해하며 큰 소리로 감탄사를 내뱉는다. 붉은색을 띤 고구마가 주렁주렁 매달린 고구마 줄기를 보며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할아버지, 정말 신기해요. 봄에 심을 때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이렇게 크고 많이 고구마가 생겼으니 정말 좋아요. 빨리 집에 가서 먹고 싶어요.”
지후의 이 말은 어린이의 순수하고 솔직한 말이다. 텃밭이 아니었다면 이런 체험을 어디서 할 수 있을까? 텃밭은 정직함과 생명의 신비를 가르치는 훌륭한 교육장이고 가족 간 특히 노소간 사랑과 소통이 싹트는 곳이다.
서울에서 공직에 근무하는 아들과 며느리도 좋아하면서 고구마 줄기를 열심히 따며 말한다. “아버님, 이 고구마 줄기 반찬 해 먹으면 맛있던데 좀 따 갈께요.”
고구마 줄기를 열심히 따는 아들 내외의 모습과 자식들에게 좋은 반찬거리를 마련해 주려는 아내의 손놀림에서 행복을 본다. 지난번에 큰 며느리와 같이 밭에 왔었는데 고구마 줄기뿐만 아니라 고구마 잎도 튀겨 먹으면 맛있다고 고구마 줄기와 함께 잎도 열심히 땄다.
이와 같이 고구마는 열매뿐만 아니라 줄기와 잎까지 모두 사람에게 통째로 주는데 나도 고구마같이 가족에 대한 사랑과 가르침, 그리고 열심히 일하는 근면을 모두 물려주고 싶다. 텃밭은 말이 없지만 정말 많은 것을 우리에게 주고 있는 사랑의 통로이다. 땀 흘려 얻은 수확물로 얻은 신선한 밥상,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나는 대화와 사랑, 텃밭은 우리 가족분만 아니라 이웃을 이어주고 나눔을 이어주는 사랑의 통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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