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결혼기념일이었다 금년은 특히 50주년 금강혼으로 의미가 있는 기념일이라 감회가 깊다. 동생이 문자를 보내 결혼기념일을 축하하며 조금 보냈으니 맛있는 거 사 먹으라 한다. 이어 큰 며느리가 “아버님, 결혼기념일 축하드려요. 어머님과 식사하시라고 조금 보냈어요. 좋은 시간 되세요,“ 전화 목소리가 예쁘다.
상냥하고 정이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의 큰예쁜이(큰 며느리, 작은 며느리를 큰 예쁜이, 작은 예쁜이로 부른다) 전화가 고맙다. 이어 작은 예쁜이와의 영상통화에서 초등학교 1학년인 손자 지후가 수영을 마치고, 호떡을 먹는 모습이 귀엽다. 저녁에 퇴근하고 받은 작은 아들의 영상통화로 부자간의 정을 나누었다.
선물을 주고받는 사람은 행복하다. 서로를 기쁘게 한다. 그래서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함께 미소 짓는 사랑의 언어이다. 대부분 물건을 건네지만, 실은 마음을 전한다. 그래서 선물은 물건이 아니라 ‘사람 사이의 따뜻한 다리’가 된다. 이 다리를 많이 놓는 사람은 기쁨도 많아질 것이다.
돌이켜보면 내 삶 속에는 늘 선물이 있었다. 해마다 설과 추석 명절이 되면 두 분 사돈과 다섯 명의 형제들, 그리고 목사님께 선물한다. 지역 특산물을 택배로 보내드리거나 직접 농사지은 초코베리, 고구마 등을 택배로 보내기도 하고, 필요한 것을 사시도록 상품권을 준비하기도 한다.
선물을 준비하는 마음은 작은 설렘과 고민이 따른다. 어떤 것으로 할 까 고민되기도 하지만 이러한 고민은 행복한 고민이 아닐까? 젊은 시절에는 선물이 일종의 예의요, 의무처럼 느껴졌다. 명절이면 챙겨야 하는 일, 해야 하는 인사처럼 여겨진 것이 사실이지만 나이가 들면서 선물을 통해 가장 크게 배운 것은 ‘감사’이다.
선물은 결국 고마움을 눈에 보이게 하는 것 아닐까? 오랜 세월을 같이 걸어온 가족, 예쁘고 착한 딸을 며느리로 맞이할 수 있게 해 준 사돈, 그리고 신앙의 양식을 지도해주시는 목사님 그 모두가 내 인생의 큰 선물이고 고등학교 시절의 동창과 선후배들과의 끈끈한 정과 만남도 큰 선물이다.
엊그제 고등학교 시절 문예신문반 선후배 모임 덕문회에 참석했다. 새로운 밀레니엄이 시작되는 2000년 12월에 정식으로 결성되었으니 25년이나 되었다. 물론 그 이전에 70년대부터 간간이 1년에 한 두번 정도는 만나 안부와 근황을 주고 받으며 우정을 나누어 왔었다. 나이 20~30년 세대차를 극복하며 선 후배가 같은 반에서 활동 했다는 이유로 <구석방>이란 동인지도 발간하였다.
우리나라 법조계의 거목으로 법무장관과 감사원장을 지낸 70년 전 선배 이종남 45회, 그 선배와 함께 교지 <덕수>를 처음 만들었다는 46회 우석규 시인, 전교 수석을 다투다가 문예신문반에 빠져 서울대학 못가고 고대를 나와 대학교수와 대학의 이사를 지낸 명예회장 51회 유광수, 대학교수 52회 천소영, 학생회장 출신의 사업가 54회 김종철, 여섯 돌들이 칠순기념 문집을 내고 내년에 팔순 기념문집을 준비중인 나의 동기들 55회 이종현, 이대용, 오형식, 남정택, 안창옥, 오경승 등의 유명 인사가 많다.
후배들도 선배들에 비해 부족함이 없다. 미술에 특기를 가져 대학교수 56회 이환범 화백, 중앙일보 기자, 논설주간 등을 역임한 58회 허남진, 케이블 낚시 사장과 LTS 61회 박세훈 사장, 언론인 SBS 사장 61회 이응모, BMW KOREA 63회 김효준 회장, 소설가 64회 황규영, 여성회원으로 신춘문예로 등단한 홍일점 76회 서진연 등등 다 열거할 수 없는 이름들이 많다.
선 후배가 마음을 나누는 일이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다. 각박하게 현실을 살아가느라 마음의 여유가 없는 탓이 클 것이다. 그러나 살아 있는 한 변함없이 만나고 선물 할 것이다. 선물을 받는 사람도 기쁘겠지만 주는 기쁨이 더 크지 않은가 싶다. 만나서 안부 전하고, 선물을 주는 것은 받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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