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원 의장 이동녕 선생

천안역사문화연구소장, 충남신문 칼럼니스트/ 김성열

편집부 | 기사입력 2021/03/25 [13:17]

의정원 의장 이동녕 선생

천안역사문화연구소장, 충남신문 칼럼니스트/ 김성열

편집부 | 입력 : 2021/03/25 [13:17]

  

 

 

대한민국 상해 임시정부 의정원 의장 이동녕 선생은 대한민국 국호를 제정 선포한 자랑스러운 천안의 인물이다. 석오 이동녕 선생은 1869년 9월 2일 목천현 동리에서 출생하였다.

 

1904년에 독립운동의 산실인 감리교 성동교회에 입교하고 김구 선생 중심 국민 계몽단체인 상동청년회에 가입하였다. 그리고 상동교회청년회 결사대에 가담하여 일제가 강압으로 체결한 보호조약을 즉시 철회를 요구하는 대한문 앞 연좌시위에 앞장섰다.

 

일제헌병 기마대는 연좌시위대를 강제 해산시키고 주동인물을 체포 투옥하고 혹독한 고문 끝에 초죽음을 석방 시켰다. 1906년 출옥 후에는 독립투쟁 실효성 불가를 판단하고 장래 나라의 동량이 될 인재를 양성하는 독립운동 교육 사업을 북간도 용정에서 최초 한국인학교 서전의숙을 설립한다.

 

1907년 도산 안창호 선생과 동행하며 기독교지도자들이 중심이 된 신민회 조직에 참여하였다. 1919년 서울 3.1만세운동을 시발로 전국에서 민족적 자결과 독립을 부르짖는 3월 함성이 퍼져만 가고 있을 때 상해에서는 그 외침을 실현하려고 독립운동 망명 애국자들이 역사적인 모임을 거사했다.

 

1919년 4월 10일 상해 임시정부 민족대표들이 임시정부 수립을 위한 의정원을 구성하고 이동녕 선생을 의장으로 선임한다. 의정원에서는 우선 임시 헌장을 제정하고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세계에 선포한다. 이때가 1919.4.13.일 이다.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제4조 주권은 인민 전체에게 있으나 국가가 광복될 때 까지는 주권이 광복운동자 전원에게 있다. 국호는 토론 끝에 대한민국으로 제정하였다. 나라 없는 민족 이름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탄생하였다. 의정원에서는 국호는 대한과 조선으로 압축됐었다.

 

조선 국호는 1392년 이성계 창업 국호로 1897년 조선왕 27대 고종까지 국호였다. 대한제국은 1897년 고종 왕이 황제국을 선포하여 1910년 한일 합방까지 존속한 국호이다.

 

일제는 1910년 10월 1일 한일 합방하면서 대한제국 국호를 조선 왕조로 바꾸고 조선총독부를 설치하게 된다. 대한제국 국호는 자주독립 의지가 엄연한 국호로 선포했으나 일제 강압에 나라이름을 빼앗겼다. 조선 왕조도 대한제국 고종 황제도 제27대 순종 황제도 모두 빼앗기게 된다.

 

이동녕 선생은 임시정부 이승만 국무충리 대행(1919), 대통령대행(1924)의 위치에서 임시 정부와 운명을 함께 했고 고락을 같이 나누었다. 실의와 낙망, 좌절과 절망의 벽 앞에서도 바람 앞에 선 거암처럼 흔들리지 않고 줄기차게 버티어 나갔다. 꺼져버린 대한민국의 등불을 다시 켜기 위해서 일신의 고생과 영화는 조금도 돌보지 않고 그의 생애를 송두리째 조국에 바친 것이다.

 

1940년 3월 13일 조국 광복 민족해방의 감격과 환호를 듣지 못하고 급성폐암으로 72세에 순국했다. 석오 이동녕 선생은 위대한 대한국민 천안인으로 영원히 우리들 심장에 천안정신으로 살아 있다.

 

천안은 마한 여러 국가 중 목지국(월지국)과 온조 백제 건국 초도 위례성 직산이다. 고려 태조 왕건 후삼국을 통일 성업한 건도 천안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을 제정한 임시정부 의정원 의장 이동녕 선생 목천이 천안삼거리에서 하나로 만난 하늘이 축복한 땅이다.

 

천안은 창업 개척정신을 정체성으로 전승하여 하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는 하늘이 주시는 평안과 하늘이 내리시는 기쁨 흥의 축복을 누리는 삶의 질 세계 100대도시 천안을 창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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