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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힘을 주는 말, 짐승떼의 ‘우리’가 되지 않아야

전) 한기대 총장 / 충남신문 칼럼니스트 문형남

편집부 | 기사입력 2020/09/01 [08:11]

‘우리’, 힘을 주는 말, 짐승떼의 ‘우리’가 되지 않아야

전) 한기대 총장 / 충남신문 칼럼니스트 문형남

편집부 | 입력 : 2020/09/01 [08:11]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기 자신과 관련된 것을 지칭할 때 ‘나’또는 ‘자기’나 ‘자신’라는 말 대신 거의 ‘우리’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나아가 자기 가족이나 자기와 가까운 사람들, 친척이나 친구 또는 후원자들을 칭할 때 ‘우리’라는 말을 사용한다.

 

국어사전에는 ‘우리’라는 말은, 말하는 이가 자기와 듣는 이, 또는 자기와 듣는 이를 포함한 여러 사람을 가리키는 일인칭 대명사라고 설명하고 있다.

 

또 ‘우리’라는 말은 짐승을 가두어 기르는 곳을 말할 때 사용한다고 하고, 경상도 방언이지만 ‘울타리’라는 의미로 사용하기도 한다.

 

심리학적으로는 ‘나’라는 개념이 더 활발해지고 더 많이 사용할수록 행복 혹은 기쁨을 추구하려는 의도로 사용하는 경향이 강하고, ‘우리’라는 개념을 더 자주 떠올릴수록 무언가 좋지 않은 일을 막아내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한다.

 

심리학적으로 ‘접근과 회피’라는 행동의 동기 측면에서 보면 ‘나’는 접근동기에 가깝고 ‘우리’는 회피동기에 가깝다. 즉, 우리는 나보다 다른 사람을 배타하는 또는 무언가 나쁜 일을 회피하기 위한 동기를 자극하기 더 쉽다.

 

우리 문화에서 전반적으로 회피동기에 기반한 사고와 행동들을 상대적으로 더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로도 생각될 수 있다. 물론 접근동기와 회피동기는 각자 장단점을 지니고 있으므로 어느 한쪽만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회피동기가 지나치게 강조될 수 있는 위험을 우리는 그 반대의 위험보다는 더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회피동기가 사회적으로 지배력을 가지면 무언가를 바라고 성취하려는 성향보다는 무언가 좋지 않은 일의 방지에 또는 좋지 않은 일을 해놓고 그것을 무마하려는데 너무 많은 힘을 쏟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는 참으로 고질병 적이라고 까지 말하여지고 있는 ‘영호남의 우리’ ‘정당간의 우리’의 배타성을 자주 보게 된다.

 

인간이 사회생활을 하게 되면 좋아하는 사람끼리 집단이 형성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리고 그 집단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를 친근하게 부르는 말이 ‘우리’라고 부르는 것은 피할 수없을 것이다.

 

인간이 감정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을 칭찬하고 격려하면서 서로 잘 되도록 도와주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미덕이다. 그러나 그것이 지나쳐서 상대적으로 다른 ‘우리’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아니 된다는 데는 누구나 동의한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감정으로 뭉쳐진 우리라는 집단의 힘으로 상대편을 공격하고 그들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하는 것은 좋은 뜻으로 뭉쳐진 ‘우리’가 마치 짐승떼들이 뭉쳐있는 ‘우리’같은 행동을 보이는 것, 정말 한탄스럽기 그지없다.

 

사회생활에는 같은 생각을 가진 집단을 보호해야 하지만 개인의 자유로운 생각이 보장되어야 하고, 사회생활에 정의와 도덕과 윤리가 있는데, 종종 ‘우리’라는 이름으로 그것을 뭉개버리는 것은 ‘우리’가 짐승떼들이 모여 사는 ‘우리’가 되고 그 짐승떼의 폭력행사와 다를 바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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