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라며 중독성 강한 가사를 반복하는 노래 ‘아파트(APT.)’가 다른 스타일로 세상에 나왔다. 제2의 ‘강남스타일’이라며 세계적인 신드롬이 일고 있다. 블랙핑크 멤버 로제와 팝스타 브루노 마스가 협업한 이 한국적인 노래는 지난달 29일 미국 빌보드 ‘핫 100’ 차트에서 8위, 각국 음원 차트를 휩쓰는 등 K팝 여성 가수로서 각종 기록을 갈아치웠다.
그것도 K팝 여성 가수 최고 기록이다. 노래 ‘아파트’를 접한 외국인들은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도대체 아파트가 뭐냐”고 궁금해했다. 아파트는 영어 Apartment를 한국식으로 부른 일종의 콩글리시다. 미국에서 아파트는 대체로 건물 소유주에게 월세를 내는 임대아파트를 뜻한다.
개별 소유자가 가진 아파트형 혹은 빌라형 주거 공간은 콘도라 부른다. 하지만 우리나라 처럼 전세와 월세, 자가가 뒤섞인 드높은 아파트가 빽빽하게 들어선 형태는 찾아보기 힘들다. 고층 닭장과 같은 구조물 속에 대다수 인구가 사는 나라 역시 몇 되질 않는다.
우리나라는 가히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별명이 어울릴 정도로 아파트가 많다. 좁은 땅에 많은 사람들이 거주해야 하니 이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홍콩 등 도시 국가 역시 아파트 공화국이라고 할 수 있겠다. 빈 땅, 주택이 밀집한 지역, 바다나 강이 가까이 보이는 자리에는 아파트가 들어섰고 인기가 높다.
세월이 지나면서 아파트는 단독주택을 점점 밀어내고 있다. 아파트는 그렇게 사람들에게 내 집 마련과 재산 증식의 꿈이자 애증의 보금자리가 됐다. 이 같은 아파트는 길을 걸어도, 차를 타고 보아도 산과 하늘을 가려가고 있다.
아파트는 우리 사회의 아킬레스건인 양극화 현상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노래 ‘아파트’의 소재는 손을 쌓아 올리면서 특정 숫자에 걸린 이가 술을 마시거나 벌칙을 수행하며 분위기를 띄우는 즐거운 놀이다.
청년들이 대학 엠티 등 술자리에서 즐기는 게임이라는 점 역시 씁쓸한 현실을 반영한다. 아파트에서 태어나 아파트만 보고 자랐으니 당연히 놀이의 소재가 된 것이다. 한국인의 애환이 서린 아파트의 역사를 속속들이 알게 된다면 어떤 반응일지 궁금하다. 우리 ‘아파트’ 노래는 ‘띵동’ 하는 초인종 소리로 시작한다.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 바람 부는 갈대숲을 지나. 언제나 나를 언제나 나를 기다리던 너의 아파트'. 1980년대를 풍미한 가수 윤수일이 작사·작곡해 발표한 대중가요 '아파트'의 앞부분 가사다. 당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많은 이들이 즐겨 불렀던 이른바 '국민가요'다.
떠나가 버린 연인의 아파트 앞을 홀로 서성인다는 구슬픈 가사를 담고 있다. 단조 노래지만 흥이 있어 야구장 등 스포츠 경기장에서 응원가로 자주 소환됐다. 한 때 노래방의 애창곡으로도 그 위세를 떨쳤다. 5060세대에게는 여전히 향수 짙은 노래로 잘 알려졌다.
윤수일의 아파트가 국내용이었다면, 이번에 나온 블랙핑크 멤버 로제가 세계적 팝스타 브루노 마스와 협업한 신곡 '아파트(APT.)'는 온라인상에서 들불처럼 번지는 글로벌용이라고 말한다면 지나칠까? 이 노래의 리듬이 단순하면서도 반복적이어서 중독의 마력을 지닌 모양이다.
누구나 따라 부르기 쉽다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인지 아파트는 국내 주요 음원 차트를 비롯해 공중파 음악방송에서 1위를 휩쓸고 있다. 스트리밍 플랫폼 스포티파이에서 7일 만에 1억 스트리밍을 달성했으며 영국 오피셜 싱글차트 톱100에 4위로 진입하기도 했다.
덩달아 음원 유통사 주가도 강세를 보였다. 유튜브와 틱톡 같은 영상 플랫폼과 소셜미디어에서는 로제의 노래와 춤, 아파트 게임을 이용해 만든 각종 밈(meme)과 챌린지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에 견줄 글로벌 메가히트곡 탄생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아파트가 유혹의 장소로 사용되고 있는 등 동양 문화의 가치관과 상충되는 행동을 노래 속에서 정상화했다며 '유해 음악'으로 평가했다. 급기야는 아파트 패러디 영상도 올라온다. 한 영상을 보면 다수의 등장인물이 아파트를 노래하던 중 한 명이 다른 친구에게 "너 아파트 있니" 하고 물어본다.
질문을 받은 한 사람이 울상을 지으면서 "나는 없다"라고 답하자 나머지도 잇달아 "나도 없다"라며 씁쓸한 표정으로 되풀이한다. 로제의 아파트가 연인의 애틋한 감정을 주제로 하고 있다면, 이 영상은 '아파트 공화국'으로 불리는 우리나라에서 주로 젊은 층들이 주택구입난을 하소연하는 매개체로 활용되고 있다.
'얼죽신(얼어 죽어도 신축아파트)'에서 즐겁게 놀았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담고 있다. 서울 등 주요 지역의 아파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아파트 생활을 원하는 젊은 층의 꿈이 점점 옅어지는 것을 빗댄 이런 패러디가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은 그만큼 젊은 층의 주거난이 심각한 상황임을 반영하고 있다.
역대 정부는 그동안 젊은 층 및 주거 취약계층의 쾌적한 삶의 질 보장을 위해 다양한 대책을 내놓았지만, 실효를 거두지는 못하고 있는 듯하다. 더 나은 삶의 공간에서 가족과 함께 편안하고 안정된 일상을 보내고 싶어 하는 주거 취약계층이 아파트 노래를 그냥 노래로 흥얼거리며 즐겨 부를 수 있는 날이 속히 오기를 기대한다.
아파트는 그렇게 서민들에게 내 집 마련과 재산 증식의 꿈이자 애증의 보금자리가 됐다. 그런 우리의 아파트 노래가 빌보드 8위로 진입했는데 한번 들으면 귀를 붙잡혀 헤어나기 힘들게 한다는 게 다르다. 블랙핑크 로제가 곡을 쓰고, 세계적 팝스타 브루노 마스가 함께하고 있다.
지극히 한국적인 일상이 세계인을 사로잡는 시대가 아파트로 인해 또 왔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말을 실감케 하고 있다. <저작권자 ⓒ 충남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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