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간에도 그렇지만 사람 사이에도 영원한 친구(우방) 관계는 없다. 상황과 상대방에 따라 금세 친구가 되고 원수도 된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를 보면 ‘각자도생’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불안스럽다.
윤 대통령은 검찰총장 당시 부산고검 차장으로 좌천돼 있던 한동훈을 찾아가 위로하며 윤·한 간 밀월을 보여줬다. 대통령이 된 후에도 한동훈 검사를 지검장·고검장을 뛰어넘어 현 정부 초대 법무부 장관으로 발탁시켜 박수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의 분위기를 보면 윤·한 간 신뢰의 시효가 끝나는가 하는 우려가 된다. 윤 대통령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2013년 10월 국회 국정감사)라는 국회 답변으로 유명했다. 당시 여주지청장으로 국정원 댓글 사건 특별수사팀의 팀장을 맡고 있을 때다.
‘강골 검사’ ‘국민 검사’의 호칭이 그를 따라다니게 된 연유다. 그 신조를 곧게 지킨 덕분에 그는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대통령 당선 제1성으로 “오직 국민만 보고 가겠다”라고 다짐했다. 국민들도 그 말을 믿고 있다.
그런데 최근 윤·한 간 회동을 지켜본 순간, 국민들은 두 사람 사이에 냉기류를 느끼게 비추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과 여당 대표는 최상위 공적의 지위다. 때문에 사보다 공을 앞세워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야당의 ‘윤석열 탄핵-김건희 특검’이라는 폭거를 앞에 놓고 있다. 지난 윤, 한 대표의 회동 이후 당정 갈등이 내부 분열의 악화일로 치닫는 모양새여 씁쓸한 분위기다. 윤 대통령은 윤, 한 회동에서는 차만 마시고 돌아간 뒤 친윤계인 추경호 원내 대표와는 저녁 식사 자리를 마련했다.
한 대표도 그다음 날 저녁 윤·한계 의원 20여 명을 모아 회동 결과를 공유하며 대책 논의로 맞대응했다. 또 친한파 의원들이 주축이 되어 특별감찰관 추천 등 ‘마이웨이’ 행보의 가속화에도 불을 붙였다. 그런 분위기 속에 야당은 이런저런 트집으로 대통령 탄핵과 하야를 운운하는 등 금도를 넘고 있다.
심지어는 국정감사에서 민주당은 김건희 여사를 불러내기 위해 동행명령장을 일방적으로 발부해 대통령 관저까지 찾아갔다. 이런 현직 대통령의 부인에 대한 처사는 헌정사상 처음이다. 어쩌다 이런 상상할 수 없는 장면이 현실화까지 왔을까?
윤 대통령은 당선 직후 의욕적으로 개혁을 추진해 청와대를 구중궁궐에서 떠나 국민 곁으로 가겠다는 공약을 실천으로 옮겼다. 취임과 함께 언론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겠다며 매일 출근길 문답(뒤에 멈춤) 기자회견도 시행했다.
취임 다음 달 미국 국빈 방문 때 국빈 만찬에서 ‘아메리칸 파이(American Pie)’란 노래를 열창, 미 상·하원 합동회의에서는 물론 자국민들로부터 여유와 자신감을 인정받아 박수를 받기도 했다. 그렇게 감성적일 수 있었던 윤 대통령이 국민 정서를 읽어내는 능력에 의구심을 낳게 하고 있어 걱정이다.
최근 윤·한 간의 회동에서 보여준 장면을 봐도 그렇다. 독대 자리에 대통령 비서실장을 배석시켜 독대엔 격이 안 맞는다는 인식을 줬다. 또 식사 시간을 피했다는 의도를 상대방에게 인식시킨 흔적도 역력했다. 한 대표의 ‘3대 요구안’ 전반을 두고도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이야기해 주면 필요한 조치를 할 것”이라고 말해 보는 사람들의 숨통을 막히게 했다.
윤·한의 회동이 빈손으로 끝난 뒤 여권 내부 갈등은 점입가경이다. 대통령은 국가 최고 책임자로서, 국정을 잘 이끌어 성과를 내는 게 의무다. 특히 여당 내부에서 다른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것은 국정 표류의 핑계가 될 수 없다.
때로는 원칙을 양보하면서도 타협한 이유다. 대통령은 국정 성과를 위해 여야와 민심을 고려해 좌고우면해야 하는 자리다. 대통령이 여당 대표를 외면하고는 국정을 제대로 풀어갈 수 없다. 한 대표도 당정 관계를 투명하게 가져가는 것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이 못마땅하다고 여당 대표를 외면하면 국정을 풀어갈 수 없다. 한 대표 역시 용산에 할 말은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대통령과의 감정싸움의 인상은 자제해야 한다. 당정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 안 된다.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마음이 답답하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가 짙어지면 국정이 갈수록 표류하고 국민들은 더 큰 해악에 직면해지기 마련이다. 민심의 인내가 한계점을 향해 가고 있음을 대통령도 집권 여당도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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