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10월 1일, 국군의 날이다. 한국전쟁 중, 1951년 10월 1일에 대한민국 육군 3사단 26 연대는 강원도 양양군서 한국전쟁 발발 후 최초로 38선 넘어 북진하였다. 최초로 38선을 넘은 날을 국군의 날로 정한 것이다.
국군의 날(國軍의 日)은 대한민국 국군을 기념하며, 국군의 위용을 세계만방에 널리 알리고 장병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정한 날로, 과거의 공군의 날 (10월 1일)·육군의 날 (10월 2일)·해군의 날(11월 11일)[1]을 한데 합치기로 하여 1956년에 제정하였다.
1956년 9월 21일 3군 기념일을 통합하고 10월 1일을 (국군의 날에 관한 규정, 대통령령)에 근거하여 국군의 날로 지정, 이날이 되면 사열·시범 전투 등 각종 행사를 국민들 앞에서 펼쳐 보인다. 장엄한 전차의 궤음과 자주포, 현무 미사일, 한국의 전투기 등은 주요한 행사이다. 대한민국은 세계 5위의 군사력 국가로 급성장하였다.
한국을 위해서는 목숨을 위국을 위해서는 헌신을 하는 국군에게 찬사와 무한한 격려를 보낸다.
여기에 정치인과 권력층에게서도 민생을 위해서 필사즉생을 기대해 본다.
호사다마(好事多磨)라 했던가. 국가도 가정도 회사도 항시 평온할 수는 없다. 평온하거나 좋은 일 뒤에는 항시 위기가 뒤에 따라온다는 것이 세상의 진리 같다. 조선에서 세종의 리더십이 빛을 발한 후에는 반정이 발생하고 그 틈을 노린 외세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치욕을 겪게 된다. 그중 우리가 치욕의 날로 역사서에 기록된 삼배구고두례 (三拜九叩頭禮)이다.
후금의 홍타이지가 국호를 청으로 새롭게 하고 황제에 즉위하여 조선에 조공과 명나라 출병을 요구하였다. 조선 국왕 인조가 이를 거절하자 숭덕제는 1636년 12월에 직접 군사를 이끌고 조선으로 출병하였고, 조선은 불과 두 달 만에 항복하였다. 인조는 음력 1월 30일에 삼전도(현재 서울특별시 송파구 삼전동 석촌호수 부근)에서 숭덕제를 향해 삼궤구고두례를 행하며 항복 의식을 하였다.
삼궤구고두례를 행하는 방식은 “궤”(跪)의 명령을 듣고 무릎을 꿇는다. “일고두”(一叩頭), “재고두”(再叩頭), “삼고두”(三叩頭)의 호령에 따라 양손을 땅에 댄 다음에 이마가 땅에 닿을 듯 머리를 조아리는 행동을 3차례 하고, “기”(起)의 호령에 따라 일어선다. 이와 같은 행동을 3회 반복한다. 인조의 삼전도 치욕은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되었다.
그중에 송파구의 삼전동은 조선시대 나루터로 군사가 상주하기 좋은 지역이었다. 병력이 있으면 물이 있어야 하는데 한강이 있고 넓은 대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적이 공격하면 배수진 역할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전쟁은 산성이 중요했으나 산성전투는 장기전에 매우 불리하다. 의식주를 산에서 해결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역대의 산성전투에서 승자보다는 패자가 많다는 사실이 검증해 준다. 인조가 남한산성의 감옥에 자발적으로 들어가서 패전하는 것은 병법상 당연하다. 장기전의 싸움에서 절대적으로 열세이기 때문이다. 이유는 의식주 해결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혹한에 산은 사람이 있을 곳이 못 된다. 겨울의 산은 냉기로 인하여 제정신으로 판단을 할 수 없다. 남한산성도 같다. 사초에 의하면 전쟁 중에 조상에 대한 제를 자주 올린 이유는 왕과 신하들을 지켜달라는 염원에서 일 것이다. 그 이유는 산은 야간에는 극심한 공포심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등산을 해본 사람들은 너무나 잘 알 것이다.
예고된 패배에서 리더십의 부재와 명분과 실리의 내부 갈등은 삼배구고두례 (三拜九叩頭禮)를 가져왔다. 병법의 달인도 없고 "붓이 나라를 지킬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 나라에서 불쌍한 것은 백성뿐이었다.
"붓"이 곧 관직이요. 권력이었기 때문이다. 붓의 숭배는 척화론자와 주전론자가 나왔고 혀끝의 정치로 명분 쌓기에 급급했다.
13척으로 133척을 승리한 이순신의 명량해전의 리더십을 인정해 주기보다 견제하고 시기하는 권력층의 기득권 챙기기는 외세에 당하고 또 당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일본의 1592년(선조)의 임진왜란(壬辰倭亂), 1597년 정유재란(丁酉再亂), 청의 1627년(인조 5년) 정묘호란(丁卯胡亂),1636년 병자호란(丙子胡亂)은 조선은 외세에 대한 최고의 방어 수단을 "붓"으로 보았다. 문인의 사회가 만든 결과이다.
유비무환은 기본인데 동인과 서인의 안목에는 보이지 않았다. "붓"만 고집하는 인재만 있었으니 지금 상황으로 보면 얼마나 답답한지 알 수가 없다.
세상의 일을 "붓"으로 해결한다면 좋겠지만 "붓”만큼 무용지물은 없을 것이다. 실무를 모르고 이론 가지고 잘 난체하는 것과 같다.
모든 피해는 백성이 감내해야 했다. 수많은 포로와 노예. 조공. 마을 초토화. 호로자식. 조혼.환향녀 등 숫자적 개념보다 패자에게는 사람이 더 이상 사람이 아닌 동물과 같은 노예로 전락한다는 사실이다.
명분과 국익 둘 중 선택하라면 국익이 중요함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그 당시는 유교문화의 교육과 사대사상이 낳은 결과이다.
한국은 풍수학적으로도 좌청룡, 우백호로 든든한 지형적인 요소를 갖추고 있다. 좌청룡과 우백호가 득세하여 가끔은 자리를 탐하지 만 우리의 땅은 명당자리에다가 호랑이 형상인 한국은 누구도 정복이 불가하다.
그것은 5000년의 역사가 증명했으며 삼전도 굴욕도, 일제강점기도 긴 역사의 일부일 뿐이다. 그들도 이제는 한국에 역할을 할 때가 있을 것이다. 좌청룡으로는 일본열도가 재해재난을 방어해주고 우백호로는 중국이 재해재난을 방어하고 있어서 백두산의 정기를 담은 한국은 최고로 지정학적 명당인 것이다.
남북이 지금 갈라진 것은 기가 상호 강하여 대립하고 있지만 이러한 기운은 상호대립과 조정을 통하여 상생발전이 가능하다.
간혹, 청룡과 백호가 세가 강하더라도 일시적일 뿐이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청룡, 백호가 정상적인 제 역할을 하여 상호 상생을 도모하면 세계의 흐름은 아시아가 세계의 중심 국가로 득세할 수 있을 것이다. 미래는 아시아이고 아시아의 명당은 한국이다. 그 중심에 우리 군이 있다.
충성! 국군의 날을 모든 장병님께 축하드립니다. (예비역 소령, 이영행) 국군의 날 파이팅!
<저작권자 ⓒ 충남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