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 대통령 이승만 박사 누구나 부인할 수 없는 업적(1)천안역사문화연구소장, 충남신문 칼럼니스트/ 김성열
영화 『건국전쟁』을 통해 인간 이승만 대통령의 진면목(眞面目)을 새로이 알게 된 사람이라면, 자신의 정치적 입장이 강남 좌파나 탈이념적일지라도 그동안 무지했거나 애써 외면해 왔던 다음 몇 가지 업적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의 업적 중 하나는, 1946년 대구 10・1사건 그리고 1948년의 제주4・3사건과 여수・순천사건 등으로 좌우 대립이 극심하고 민심이 찢기고 분열됐던, 해방정국에서,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하여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반공 자유민주주의 체제 안착에 결정적인 공을 세웠다는 점이다.
수많은 정당과 사회단체가 난립하여 어느 누구도 주도권을 잡기 어려웠던 혼돈의 시기에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로서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고, 겨레의 큰 어르신(1945년에 70세였음)으로 절대 다수의 존경을 받고 있던 이승만이 없었더라면, 대한민국 정부수립이 과연 가능했을까?
당시 유엔은 한반도 전체에서 유엔 감시하의 선거를 통해 합법적인 정부를 수립하기로 결의했으나, 남한을 공산화하고자 획책했던 소련(스탈린)과 김일성 집단은 북한을 이미 완전히 장악한 상태였기 때문에 이를 거부했다.
북한에서는 선거를 할 수 없게 되자, 할 수 없이 유엔은 단독 선거(즉, 선거가 가능했던 남한만의 선거)를 실시하려고 했는데, 국제정세에 어두웠던 감상적 민족주의자들과 북한의 지령을 받은 남로당 박헌영 일파가 극렬하게 반대 투쟁을 하는 바람에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때 존경받는 민족 지도자 이승만이 없었다면, 전국 도처에서 일어나는 반대 투쟁이 더욱 극심했을 것이므로 선거가 정상적으로 치러지지 못했을 가능성이 컸다.
가까스로 조선 왕정과 일제 강점기를 벗어난 한반도 전체를 공산화시켜 세계 공산권에 편입하려는 스탈린의 집요한 공작에 맞서 3년간의 악전고투를 벌인 끝에 이승만은 드디어 38선 이남에 사는 우리 민족이나마 명실상부한 독립국가의 국민으로 다시 탄생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승만 대통령의 업적 중 또 하나는, 소련(스탈린)과 중공(마오쩌둥)의 지원을 받아 김일성이 기습 남침한 1950년 6・25전쟁에서 3일 만에 수도 서울이 함락당하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을 때, 단호한 결단력과 탁월한 외교력으로 자유 대한민국을 지켜냈다는 점이다.
이승만이 자신의 안위만을 걱정하는 비겁한 대통령이었다면, 냉전 시대 초기의 국제 정치 상황에 대한 통찰력이 부족한 대통령이었다면, 대한민국은 건국 2년 만인 1950년에 지도상에서 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를 뒷받침하는 역사적 사실과 증거 자료들은 차고 넘치게 많다. 다만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다른 무엇보다도 강력한 증거가 있다. 반(反)대한민국 세력과 북한이, 1965년에 돌아가신 이승만 대통령을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없는 사실을 날조하면서까지 나쁜 인간으로 매도하고 모함하고 폄훼하는 것이 바로 결정적인 증거다. 그들은 이승만이 아니었다면 1950년에 이미 적화통일을 완수했을 거란 생각에, 그분에 대해 깊은 원한이 맺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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