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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탐사기획보도…제9탄, 조선 예원의 마지막 불꽃 추사 김정희!

추사체, 서예 사상 독보적 경지…시(詩), 서(書), 화(畵), 전각(篆刻) 등 탁월

정덕진 기자 | 기사입력 2021/07/28 [15:58]

[특집]탐사기획보도…제9탄, 조선 예원의 마지막 불꽃 추사 김정희!

추사체, 서예 사상 독보적 경지…시(詩), 서(書), 화(畵), 전각(篆刻) 등 탁월

정덕진 기자 | 입력 : 2021/07/28 [15:58]

충청남도 지역 언론 지원사업내포 문화의 역사적 인물집중 탐방

 

국보작품, 세한도(歲寒圖)불이선란(不二禪蘭)묵란도(墨蘭圖)묵죽도(墨竹圖) 등 

 

 이수경(시조시인, 덕향문학 사무총장)

신동 김정희

 

김정희는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기백이 뛰어났다. 7살 되던 해에 서울 집 대문에 써 붙인 입춘대길(立春大吉)”의 글씨를 우연히 보게 된 재상 채제공(蔡濟恭)은 단번에 그의 천재성을 알아보았다. 그의 인생에 빛과 그림자를 아울러 드리우고 있음을 알아본 노재상이 그의 아버지에게 이 아이는 글씨로서 대성하겠으나 그 길로 가면 인생행로가 몹시 험난할 것이니 다른 길을 선택하게 하시오.”라고 충고했다는 일화가 있다. 명필로 유명한 가문에서 태어난 추사의 예술성은 북학파(北學派)의 일인자인 박제가(朴齊家)의 제자가 되었다.

 

 

출생과 가문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1786-1856)는 예산 용궁리의 월성위(月城尉) 집안의 향저(지금의 추사고택)에서 1786(정조 10) 63일에 태어났다. 추사의 고조부 김흥경은 영의정을 지냈고, 증조부 김한신은 영조의 딸 화순옹주와 결혼하여 월성위에 봉해지면서 추사의 가문은 명문가로 발돋음하는 계기가 되었고, 김한신이 후사없이 세상을 떠나게 되자 조카이자 추사의 조부인 김이주를 양자로 들이게 된다. 김이주는 영조의 비호아래 대사헌, 형조판서등 높은 벼슬을 지냈으며 아들 넷을 낳아 집안을 크게 일으켰다. 추사는 그중, 이조판서 김노경(金魯敬)의 맏아들로 태어나 백부 김노영에게 양자로 보내져 월성위의 봉사손(奉祀孫)이 되었다.

 

 

추사의 학문과 예술

 

내 글씨는 비록 말할 것도 못되지만, 나는 70평생에 벼루 열 개 붓 일천 자루를 몽당붓으로 만들었다라시던 추사 김정희는 조선왕조 후기의 대표적인 실학자이며 서예가로, 병조참판과 성균관 대사성을 지냈으며, 시대사조의 구문과 체계를 탈피하여 신지식의 선두자로, 새로운 학문과 사상을 받아들여 신문화 전개를 가능케 한 선각자(先覺者)이자 실학자이다.

 

 추사 김정희 초상화



청나라 동부지사로 가는 아버지를 따라 연경에 체류하면서, 옹방강(翁方綱완원(阮元) 같은 이름난 유학자와 접하면서 학문 방향은 청나라의 고증학(考證學) 쪽으로 기울어졌고, 이 시기의 연경 학계는 고증학의 수준이 최고조에 이르렀었다. 추사는 북학파의 거벽(巨擘)으로 청조의 고증학풍(考證學風)을 도입하였고, 종래 경학(經學)의 보조 학문으로 존재하였던 금석학(金石學), 사학(史學), 지리학(地理學), 문자학(文字學), 경학(經學), 천문학(天文學),음운학(音韻學),천산학(天算學)에 이르기까지 박통(博通) 하였고, 그 가운데서도 금석학은 문자학과 서도사(書道史)의 연구와 더불어 독자적인 학문 분야로 큰 발전을 이루었다.

 

 



저서로는예당금석과안록(禮堂金石過眼錄)”,“완당집(阮堂潗)“,”실사구시설(實事求是說)“,”역서변(易筮辨)“,”신라진흥왕릉고(新羅振興王陵攷)“ 등이 있다. 천부적인 재질을 바탕으로 넓고 깊은 학문과 예술은 시(), (), (), 전각(篆刻), 등에도 뛰어났으며,”추사체로 서예사상 최고의 독보적인 경지를 이룩하였다. 작품으로는 국보로 지정된 세한도(歲寒圖)“ 와 불이선란(不二禪蘭), 묵란도(墨蘭圖), 묵죽도(墨竹圖) 등이 있다.

 

 

우리나라 역사상 이름을 남긴 사람들은 많지만 김정희의 천재성은 모진 시련 속에서 한층 빛을 냈다. 그는 생애의 시련기에 새로운 예술을 창조해 내었다. 좌절하지 않고 조선후기 학문과 예술의 선각자로 우뚝선 추사 김정희! 240여년을 이어온 그 뜨거운 DNA가 대한민국의 한류문화가 세계를 열광케 하는 디딤돌이 되지 않았을까?

 

 

세한도(歲寒圖) - 국보 제180

세한도는 1844년 완당나이 59세때 제주도 귀양살이 하는 동안에 제자인 우선 이상적(藕船 李尙迪)이 정성을 다해 청나라 연경에서 구해온 책을 연경에서 보내주는 등 변함없이 사제의 의리를 지켜준 것에 대한 고마움을 비유하여그려준 그림으로 완당생에 최고의 명작이다.

[본 기획 기사는 충청남도 지역언론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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